심상정 후보의 토론을 지지한다 (샌더스의 선거운동은 무의미했는가)

심상정 후보의 토론을 지지한다
- 샌더스의 선거운동은 무의미했는가 - 

심상정은 왜 출마하는가

얼마 전에 손석희 앵커가 심상정 후보에게 '당선 가능성이 없는데 왜 출마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심상정 후보와의 대화는 다른 쪽으로 전개가 되었지만 사실 생각해볼 점은 '정말 왜 심상정은 출마를 했는가?', '정의당은 왜 후보를 냈는가?'일 것이다. 왜 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 대통령을 배출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집권은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궁극의 목표이며 종착역인가. 그렇지 않다. 집권도 하나의 수단이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다. 정당의 목표는 (물론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집권을 통해서' 자신들이 믿는 바에 따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데 있다. 대통령 당선과 국회의원 당선은 정당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조건 대통령 자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소수 정당도, 원외 정당도, 시민 단체도, 무한도전도, 심지어 개인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선거 운동을 하는 이유는...

이런 관점에서 선거 운동이란 아주 '매력적인 수단'이다. 해외의 정치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낙선한 후보들이 하는 말이다.

'정말 대단한 캠페인 이었어. 우리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 했어.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정치를 학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저 문장이 선거운동의 의의를 충분히 설명 했으리라 생각한다.
정의당은 소수 블록이다. 정의당은 (적어도 이 선거제도 하에서는) 다수당은 커녕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도 힘들고 대통령 당선자를 내기는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운동은 정의당에게 더 의미 있는 수단이다. 지지자를 결집하고 선명한 아젠다를 내세워서 선두 후보를 압박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 심상정 후보의 전략이 진보적 의제에 대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정확한 의견을 확인하고 더 선명한 정책 실천을 위한 약속을 받아내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이 소수당의 선거 운동 전략이기 때문이다. 심 후보와 당 그리고 캠프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들이 '문재인을 때려서 우리 지지율을 올리자'는 어설픈 생각으로 움직였다고 보지 않는다.

경향신문 기사 중에 "정의당이 민주당 식민지인가"라는 네티즌의 의견이 있었다.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정의당은 (당선이 되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정의당의 영향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의당의 지지율이 부럽다면, 혹은 아쉽다면 정의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공약으로 반영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힐러리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의 정책을 일부 받아 들였고, 버니 샌더스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훌륭한 캠페인'을 했던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 전부가 아니다. 당선 가능성이 선거 운동의 모든 것이라면 여론 조사로 지지율 10% 미만의 후보들은 잘라내고 선거를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다소 무리한 예이지만 그만큼 답답하다는 뜻이다.

약속을 받고 싶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민주당 계열의 집권기에 진보정당이 성장했다는 말에 동의한다. 서운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 (물론 그 서운함이 정의당의 존재 의미와 심 후보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까지 옮겨가는 데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그 동안 민주당이 걸어온 길에도 서운하다. 어제 문 후보도 '과'는 인정한다고 했다. 나도 생활인으로써 잦은 잘 못과 실수 속에서 산다. 과오가 있다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더 확실한 약속을 받고 싶은 것이다.

IMF 때문에 그랬고, 미국의 요구 때문에 그랬고, 한나라당 때문에 그랬고, 새누리당 때문에 그랬고, 자유한국당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집권은 왜 하려고 하는가.
지금의 민주당에게 더 많은 의석과 대통령직이 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 때는 대통령직과 과반수 의석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내가 민주당에게, 문재인 후보에게 요구하는 것은 시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강한 개혁의 의지와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합리성과 원활한 소통, 그리고 다른 정파의 반대를 돌파할 수 있는 정치력이다. 이게 없다면 대통령직이 있어도, 과반의 의석이 있어도 정당의 목표, 정치의 목표는 이룰 수 없다. 왜냐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긴 이유로 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에 대한 비판에 이해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동시에 당원으로써 동일한 주장을 하는 분들은 이해와 동의가 모두 어렵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은 개혁의 출발점이지 개혁의 완성이 아니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것이 정권이 교체되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국회 과반이 없어서 아무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면 정권 교체를 왜 해야 한다는 말인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라는 것이 왜 비난 받을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의 대선후보가 '단지 정권교체가 아닌 세상의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당원들에게 비난 받을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마치며
아마 이 당에는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어떤 날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울컥할 때도 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저 사람처럼 훌륭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어머니가 전화 너머로 하소연 하시곤 하는 아버지의 아쉬운 부분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생긴 것부터 성격까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하고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만 가급적 나의 미래의 배우자에게 똑같은 하소연은 안 들었으면 한다. 나는 우리 아버지도 내가 그 부분은 안 닮았기를 바라신다고 믿고 있다.

by maniacs | 2017/04/20 18:46 | 메모 | 트랙백 | 덧글(1)

 

2017년 4월 3일 디오피니언/내일신문 조사에 대한 기술적 고찰

지인들에게 지난 이틀 동안 회자된 '디오피니언/내일신문' 조사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려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어떤 사람에게는 글을 다 읽는 것이 불필요한 수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글 맨 뒤의 결론을 먼저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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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나는 여전히 이택수 대표의 견해에 동의한다. 또한 안철수의 상승세는여러 데이터를 비교할 때 엄연한 사실이다. 양자대결이 되면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고 박빙이 되거나역전도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양자구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생각한다. 하지만 이 견해와 절대적으로 전혀 관계 없이 오직 직업적인 관점에서 나는 디오피니언이 왜이런 조사 설계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조사는 많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조사는 없다. 다만 디오피니언의 설계는 가급적 피해야할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고 디오피니언이나 내일신문이 이번 대선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이 방식의 조사는 적어도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오피니언/내일신문의 반론처럼 "여론조사방식에는 유선전화, 무선전화(모바일), 설문, 직접면접, 패널조사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중 어느 방식이 가장 객관적이고 나은지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전문가나 선관위도 정답이 없다”(이윤우 디오피니언 부소장

다만 그 말은 맞는데 내 팀원이 설계를 이렇게해오면 나는 다시 해오라고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지지율이 높은 설문조사가 나왔다고 과도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어색하다. 조사하는 사람으로써 기술적인 설명은 다 했으니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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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17 43일 발표된 '디오피니언/내일신문'의 대선 여론조사와 관련하여말이 많다. 기존의 조사와 달리 양자대결 시 지지율이 문재인36.4%, 안철수 43.6%로 안철수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가 (문재인의 우위가 명백한) 기존의 조사들과 배치된다는 것이다가장 가까운 시기(3 30)의 '리서치앤리서치/동아일보' 조사에서도 양자대결 시 문재인(41.7%)이 안철수(39.3%)를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의도가 개입된 조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 되었다. 다만 디오피니언의 조사가 문재인이 대선주자가 사실상 확정되고 안희정, 이재명지지자들의 이동이 더 많이 이루어진 시점에 진행 되었기 때문에 안철수의 우세가 사실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 이후의 흐름을 보면 안철수가 많이 따라온 것이 사실이고 한 두개의 조사에서 역전이 되는 것이 아주 말이 안되는 상황도 아니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의 해석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알려져 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최근 발표되는 양자구도에서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간의 결과가 조사기관마다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질문 워딩에서 소속정당과 단일화, 연대의 파트너 설명이 모두 빠지고 이름만 호명되는 경우 문재인 vs 비문구도로 인지되어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문후보에게 불리하고, 질문 워딩에서 소속정당과 단일화 연대의 파트너설명이 들어갈 경우 문재인 후보가 우세한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2. 무선 RDD의 반영비율에 따라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일신문은 무선RDD 0%, 조원씨앤아이는 무선RDD 55%, 리서치앤리서치는 무선 RDD 61%이고,무선 RDD 90% 전후 반영하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의 조사결과를 추후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내일 발표하는YTN도 이름만 호명하고 무선RDD60% 조건이면 양자구도의경우 문-안 팽팽하거나안이 소폭 높거나할 듯 싶습니다.

 

근데 정작 중보,보수 단일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홍준표-유승민 단일화 정도가 가능해서4자 구도(문재인-홍준표-안철수-심상정)가 여전히유력합니다.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약간의 기술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누군가가 '무선 RDD가 정확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난 총선때 무선 RDD 조사와 다른 방식 조사의 예측력은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한 답과 더불어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조사방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와중에 알게 된 디오피니언/내일신문 조사의 한계점에 대한내용이다. 일부에서 지적되고 있는 설문 문항에 따른 차이는 제외하고 표본 및 표집에 대해서만 정리했다.



01 2016년도 20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 및 예측




02

디오피니언은 내일신문과 함께 매달 정례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위의디오피니언 조사 결과는 작년 총선 직전 실시된 것이다. 위의 리서치뷰 조사 역시 작년 4월 진행된 것인데 100% RDD(무작위 전화번호 추출)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이다. 굳이 따지면 리서치뷰 조사가 좀 더 정확해 보인다. 디오피니언 조사와의 차이점은다음과 같다


1) 유선 전화가 포함되었느냐

2) 인터넷 조사가 포함되었느냐

3) 전화번호 추출이 전화번호부 방식이냐 RDD 방식이냐 (리서치뷰 조사는 유선 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정확한비교는 어렵지만 유선 전화 RDD 방식을 사용하는 조사가 많이 있으므로 여기에서 논하기로 한다)

4) 면접 방식이 ARS(기계가문항을읽고 번호를 입력해 응답하는 방식)이냐 전화면접(사람과직접이야기하는 방식)이냐

 

각각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03 무선표집, 유선전화와 RDD (Random Digit Dialing)

조사에서 샘플을 모집할 때에는 대개 '무선표집(Random Sampling)'을 목표로 한다. 무선표집이란 모집단에 포함된모든 사람이 표본에 추출될 확률이 동일할 때 완성된다. 그래야 그 표본집단은 대표성이 있다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를 할 때 남자는 표본에 추출된 확률이 50%이고 여자는 25%라고 가정해 보자. 그 결과는 대표성이 없다. 성별,연령, 직업,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확률이 동일해야'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대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낮아서 무선표집이 어려운 경우(전화를 1000번 걸어야 1명 해당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거나)나 비용의 제약이 있는 경우(앞의 예의 경우, 1명을 위해 999번 전화를 건 비용이 소모된다) 등에는 예외가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대표성 보다는 조사 가능성에 더 염두를 두고 타겟 표집(Target Sampling)/할당 표집(QuotaSampling)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법은 조사 대상자의 범위가 좁고(. 6개월 이내 스마트폰 구매자)설문 길이가 길어서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주로 시장조사에 많이 쓰인다. 10분 내외의 정치/여론조사의 경우, 대표성이 생명이고 비용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무선표집은 필수적이며 어떻게 모든 국민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가능성을 동일하게 만들 것인가를 목표로 연구를 하게 된다. (혹은 여론조사 메일을 받을 가능성, 대면면접을 위해 면접원을 마주칠 가능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 나아가서는 전화를 받은 후에 설문에 응한 가능성도 동일하게 만드는것이 목표다.

 

여론조사의 적중율이 낮아지면서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가 유선전화로 하는 조사 방법이었다. 이전에는 KT에서 만든 전화번호부를 기준으로 전화를 걸었다. (참고로 이렇게 표본을 추출하는 명단/데이터베이스/풀을 추출틀(Sampling Frame)이라고 한다) 만약 모든 집에 유선전화가 있고 모든 번호가 전화번호부에 등재 되어 있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전국에 2,000만 가구와 2,000만대의 유선전화가 있고 2,000명을 조사해야 한다면 전화번호부 책을 열고 첫번째번호, 1만 첫번째 번호, 2만 첫번째 번호 하는 식으로 전화를 걸면 된다


전화번호부가 가나다 이름순(정치성향 순이 아니라)으로 정렬이 되어 있고 그렇게 정렬된 결과에 (우연이든 아니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든 패턴(예를 들어 1~99번째 번호는 보수적, 101~199번째 번호는 진보적 다시 200~299번째 번호는 진보적)이 없다면 무선표집이 된 것이다. 물론 응답율이 10%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만 명에 1명이 아니라 천 명에 1명 정도로 비율로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화번호부 대신 전화번호부가 저장된 컴퓨터 파일을 사용할 때도 동일하다. 컴퓨터가 난수를 발생해서 전화를 걸 번호를 추출해주면 된다. 즉, KT 전화번호부를 사용해도 RDD 표집(무선 표집)은 가능하다.


전화번호의 기준이 가구이기는 하지만 해당 가구 내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조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큰문제는 없다. 이 외에 전화 거는 시간에 따라서도 응답자의 연령 분포가 달라지고 전화를 안 받는 경우나 받고도 대답을 안 하는비율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지만 여기서 그 논의는 일단 제외하도록 한다.

 

무선표집이 아주 잘 되는 예는 출구조사이다. 보통 출구조사 시에는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5명에 1, 혹은 10명의 1명의유권자를 표집한다. 투표소에서 나오는 순서와 투표성향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 투표소에서 나오는 순서는 랜덤이므로) 모든 투표자는 표집될 확률이 20%(5명에 1명일 경우)로동일하고 정치성향과 연관된 패턴을 갖지 않게 된다.

 

다시 유선전화 문제로 돌아와 보자. 유선전화의 문제는 추출틀(Sampling Frame) 안에서 무선표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고 추출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 듯이 요즘에 유선전화를 가진 가정은 줄어들고 있고 특히 젊은 층이 그렇다. , 표본 추출틀로 유선전화 전화번호부를 사용하면 유선전화가 없는 젊은층은 유선 전화가 있는 고연령층 대비 표집이 덜 된다또한 전체 유선전화 중에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비율이 50-60%로 추정된다. 미등재자들 역시 표집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피치 못하게 (피치 못한 상황은 아래에 나온다) 유선전화로 조사를 할 경우에도 유선전화 RDD 방식을 사용한다. 집전화 번호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생성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이라면 컴퓨터가 02-0000-0000부터 02-9999-9999 사이에서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선택해서 전화를 거는 것이다. RDD는 Random Digit Dialing의 약자인데 말 그대로 전화번호 자릿수에 맞춰서 아무 번호나 만든 다음에 전화를 건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국 유선 전화가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유선전화라는 표집틀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 무선 RDD 방식으로 진행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성인 중에 무선전화(휴대폰)을 가진 비율은 거의100%에근접한다. 또한 컴퓨터가 가능한 모든 휴대폰 번호(010-0000-0000부터010-9999-9999까지)를 놓고 무작위로(랜덤하게) 번호를골라 주기 때문에 휴대폰을 가진 사람, 즉 거의 모든 유권자들은 표집된 확률이 이론상 같다고 할 수 있다물론 무선 RDD라고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아니다.

 

위의 디오피니언 조사의 설계에 따르면 추출틀은 '유선전화번호/기타/2012년 이전 조사협회 제공 한국전화번호부 주식회사 DB'라고 되어 있고 추출 방식은 (당연하게도) '무작위 추출(무선표집의 다른 말)'이다. 추출은 무작위로 했지만 기본적으로 추출틀이 KT전화번호부 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무선표집이 잘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왜 RDD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약간 의아하다. RDD라고 해도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유선전화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총선의 경우,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위해서는 특정 지역구에 사는 사람에게만 전화를 해야 한다무선표집을 위해 무작정 RDD 방식으로 전화를 걸어서 '서울 서초구에사는 유권자'를 찾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이 표시된 유선전화와 전화번호부가 아직도 사용된다. 추출틀에 문제가 있지만 할 수 없다.


종종 여론조사로 지역구 후보를 결정하는 정당 입장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된다. 여론조사가 정확해야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총선 때, 안심번호 경선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도입 되었다통신사가 가입자의 전화 번호 옆에 주소를 표시 해서 정당에 전달하면 정당에서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름에서알 수 있듯이 진짜 전화번호를 주는 것이 아니고 일정 시간 후에 소멸하는 '안심번호'를 생성해서 주기 때문에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러니까 새로 생긴 법은 통신사에게 안심번호를 만들어서 정당에 전달할 의무를 지운 법이다정당이 통신사에 비용을 지불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조사회사에서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일반 여론조사의 경우에는 '안심번호'를 사용하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도입되지 않고 있다.


 

04 무선표집, 인터넷 조사와 RDD

디오피니언의 특징은 인터넷 조사이다. 처음에 디오피니언의 결과가 회자되고조사 방법이 인터넷, 좀 더 자세하게는 응답 대상자(응답을 해줬으면하는 사람들. '응답자'는 실제로 응답을 완료한 사람들)들에게 문자로 인터넷 링크를 보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첫 궁금증은 다음과 같았다. '문자를 받는 전화번호를 어떻게 골랐나?' , 인터넷으로 응답한 사람들이 무선표집 되었냐는 것이다. 휴대전화번호를 RDD 방식으로 골랐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조사를 전화로 하는지, 얼굴보고하는지, 인터넷으로 하는지에 따라서도 결과에 차이가 나긴 하지만 경험 상 표집 방식만큼의 영향력은 없다고 판단된다.)


디오피니언의 이번 조사에서 인터넷 응답을 한 사람들의 추출틀과 구축방법은 다음과 같다.


추출틀: 무선전화번호 / 구매 DB / 서베이링크 휴대폰DB

구축방법: 서베이링크온라인과 모바일 기조사에서 향후 조사 협조 의향자


이 추출틀 내에서는 무선표집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 추출틀은유효한것인가? '구매 DB''XXXXX 휴대폰 DB' (XXXXX는 조사업계의 회사이다. 해당 업체의 과실이 없지만 난독/오독의 우려가 있어 익명으로 처리한다)의 자세한 사항을 알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일반론적인 관점에서는 아쉬운 면이 있다.

 

'XXXXX'사는 온라인 패널 서비스를 하는 회사이다. 이 서비스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은 패널업체(Panel Provider)라고부르기도한다. 'XXXXX'사는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주력 업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패널업체들이 하는 일은 조사에 필요한 응답자를 공급해주는 일인데 거의 대부분 온라인 조사의 응답자를 공급한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에 설문조사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회원들을 모집하고 관리하며 이상한 회원은 쫓아내기도 한다. 조사를 하고 싶은 기관이나 회사가 '우리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1000명 필요하다'고 의뢰를 하면 패널업체가 메일이나 문자를 회원들에게 보낸다. 메일이나 문자 안에는 설문 조사 페이지로 이어지는 링크가 들어 있다. 회원들은링크에 들어가서 몇 가지 심사설문(원하는 종류의 응답자를 걸러내는 설문 문항)에 응답하고 자격이 있는 경우에 본 설문까지 마치게 된다. 설문에충실히 응답했을 경우, 패널업체에서 일정한 사례를 제공하고 관련된 비용을 의뢰인에게 청구하면 조사가 완료된다.


하나 알아야 하는 점은 패널업체를 통한 조사는 주로 시장조사에서 많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사회/여론 조사에서도 간단한 사회 의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하는경우에는 패널업체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선/총선 지지율 조사를 패널업체를 통해서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유는 패널에 가입된 회원들의 대표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전국민이 성, 연령, 소득등에 관계 없이 패널에 가입할 가능성이 동일하다면 패널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패널 내에서 다시 일부 집단을 랜덤으로 모집하면 역시 대표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패널에 가입된 회원들은 약간(많지는 않다)의 사례를 받고 조사에 열심히 참가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예상되는 문제는다음과 같다.


1) 인터넷 활용이 능숙한 젊은이들이 많다. 인터넷 활용이 많은 한국만 하더라도 패널에 가입된 50대는 인구분포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패널에 가입한 50대를 찾더라도 또래보다 인터넷을 잘 쓰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50대 전체를 대변하기 어렵다.

2) 조사에 열의가 높다. 이것은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약간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성격이 아주 활달한 사람들만 조사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3) 사례에 민감한 사람일 수 있다.많지 않은 사례이지만 용돈 벌이라도 하기 위해 돈에 민감한 사람들이 패널에 가입할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사실 그보다도 응답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허위로 참가하거나 복수로 참가하는 경우들로 의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이런 문제 때문에 대표성이 생명인 정치조사의 경우에(특히 지지율 조사) 패널업체를 잘 사용하는 온라인 조사를 잘하하지 않는다. 대신 패널업체는 시장조사에서 많이 사용한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다. 온라인 조사와 패널업체가 존재하기 전에는 전화면접과 대면면접(FTF interview)이 주로 이루어졌다. 전화면접은 10분 이상 진행이 어렵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시장 조사(길면 1시간도 한다)는 주로 대면면접으로 진행했는데 온라인 조사에 비하면엄청난 비용이 든다. 온라인 조사를 하게 되면 혼자 언제 어디서나 참여가 가능하지만 대면조사에는 면접원도 필요하고 설문지도 인쇄해야 한다. 특히 조사지역이 전국이 되면 지방의 업체에 다시 외주를 주거나 면접원을 교육시켜서 현지까지 보내야 한다. (교통비, 숙박비, 체류비가 든다.) 실물을 보여줘야 하거나 특정 위치에서 하는 조사(예를 들면 매장 방문 만족도 조사)를 제외하면 요즘에는 대면조사가 예전만큼 많지 않은 편이고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한 가지 시장조사에서 패널업체를 통해 온라인 조사를 하는 이유는 응답자를 찾기가 쉽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때 전화면접 실습을 한 적이 있었다. 일종의 여론조사였기 때문에전화만 받아주고 응답만 해주겠다고 하며 누구나 조사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17번 통화를 해서야 겨우 1명을 완료했다. 만약에 조사 대상이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조사라고 가정하면 20번 통화가 성사 되어야 1명이 조사 대상자가될 것이기 때문에 총 340회 전화를 해야 17번 통화가 성사되고 겨우 1명이 심사설문을 통과해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다. 반면 수십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패널업체를 통하면 이 과정이 훨씬 빠르고 쉽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디오피니언의 표본추출 방법 중에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추출틀의 구축방법(서베이링크온라인과 모바일 기조사에서 향후 조사 협조 의향자)이다.특히 '기조사에서향후 조사 협조 의향자' 부분인데, 일반적으로 조사에서는한 번 응답한 사람은 가급적 다시 조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 응답한 사람을영 원히 시장/여론조사의 응답 대상에서 제외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최근 몇 개월 이내에 조사에 참가한 사람을 제외하는 식으로 적용한다. 물론 디오피니언에서도 몇 개월 정도 기준을 두고 적용했을 것이다. 시장조사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써 여론/정치/사회조사 쪽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이런 방식의 재초대(응답자를 다시 부르는 것)는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미 대표성을 상당부분잃은 패널업체에서 표본을 공급 받았고, 그 중에서 다시 조사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 걸러지면서 대표성에 다시 한번 손상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한 조사에 반복 참가할 경우에는 조사 자체가 편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 부분은 이전 참가자를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고만 볼 수는 없다) 재초대 시의 자세한 규정을 알 수 없고 디오피니언에서 엄격하게 진행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표집이 상대적으로 쉬운 (즉, 응답 대상인 '유권자'가 널리고 널린) 조사에서 왜 굳이 기존에 조사한 샘플을 포함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 조사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조사회사이자 국내 최대 패널업체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정례조사는 유무선RDD로 진행되고 온라인 조사가 없다는 것이다.



05 전화 면접방식, ARS 대 전화면접(사람)

요즘 추세는 ARS를 좀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특히 지지율처럼 택1하면 끝나는 조사는 비용도 절감된다. 예전에는(지역감정이 무성하던 시절면접원의사투리에 따라서도 응답이 달라진다는 소문도 있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지지자를 밝히라고 하면 무응답율이 높아진다는 견해도 있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전화면접원들이 일하고 있고 전화면접이 잘 못된 방식은 아니다. 다른 조사업체에서도 전화면접으로 지지율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글 첫머리에 제시된 20대 총선 직전(2016년도 4) 디오피니언조사 결과를 보면 '기타/무응답' 비율이 리서치앤뷰 대비 너무 높은 것이 눈에 띈다. 여러 설계의 여러 아쉬움을 확인해서인지 데이터의 차이가 너무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설계나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언가 실사단계(실제로 설문지를 읽으며 면접을 진행하는 단계) 관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싶을 정도다.

 

 

06 결론

나는 여전히 이택수 대표의 견해에 동의한다또한 안철수의 상승세는 여러 데이터를 비교할 때 엄연한 사실이다양자대결이 되면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고 박빙이 되거나 역전도 할 수 있겠지만어차피 양자구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 견해와 절대적으로 전혀 관계 없이 오직 직업적인 관점에서 나는 디오피니언이 왜 이런 조사 설계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조사는 많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조사는 없다. 다만 디오피니언의 설계는 가급적 피해야할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고 디오피니언이나 내일신문이 이번 대선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왜냐면 이 방식의 조사는 적어도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디오피니언/내일신문의 반론처럼 "여론조사방식에는 유선전화무선전화(모바일), 설문직접면접패널조사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중 어느 방식이 가장 객관적이고 나은지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전문가나 선관위도 정답이 없다”(이윤우 디오피니언 부소장

다만 그 말은 맞는데 내 팀원이 설계를 이렇게 해오면 나는 다시 해오라고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지지율이 높은 설문조사가 나왔다고 과도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어색하다. 조사하는 사람으로써 기술적인 설명은 다 했으니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by maniacs | 2017/04/06 00:45 | 메모 | 트랙백 | 덧글(3)

 

자유발언

이 글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많이 퍼날라 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하는데...제 인간관계가 많이 좁네요.--.


(나에게 기회가 있다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6년 대한민국에 살았던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던 시간을 보내며한 명의 시민으로써 생각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제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정치는 초등학생때입니다. 그 때는 국민학교였지요. 그 전의 몇 년 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다사다난 했던 87년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가 기억하는 87년이 87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선거는 88년도의 13대 총선이었고 그 다음은 13대 대선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개표를 하고 있었죠. 5공 청문회도 기억이 납니다. 낮과 밤에는 TV를 안 하던 시절이라서 특별 방송이 나오는 것이 좋았습니다. 내용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89년에서 90년으로 넘어가던 겨울방학에 친척집에서 신나게 놀다 왔더니 3당합당이 되어 있던 것도 기억합니다.오히려 중고등학교 때에는 정치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오고 97년도 대선이 한창일 때,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서 김민석 의원이하던 김대중 지지연설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친구들과이번엔 DJ, 차기에는 노무현, 차차기는 김민석이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2년 대선 때에는 친구들과 개표를보면서 기뻐했습니다. 2004년도 탄핵이 가결되던 순간에는 용산의 중앙대 병원 로비에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TV를 보고 나서서 택시를 탔는데 눈물이 핑 돌았죠. 그리고 비극적이고 실망스럽던 세월이 10년 넘게 흘렀습니다. 이제까지 꽤 많은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마도 2017년 오늘이 제가 겪은 정치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했던 사건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곧 마흔 살이 됩니다. 한 살을 먹는 다는 것은 사실 단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번 공전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제가 이런 공전주기를 가진 행성에 태어난 것도 우연일 테니 사실 마흔이라는 숫자는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살시간의 절반 정도에 다다랐다는 것은 공전주기보다는 조금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마흔 살먹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무시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괜히 의미를 두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4년 동안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조사회사에서 11년을 근무했고 이제 성인이 된지 만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깨달은 것은 이렇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 합니다. 보고서의 질은 클라이언트의 질을 능가하지 못 합니다. 정치의 질은 국민의 질을 능가하지 못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우리 정치의 암울함은 단지 부패한 정치인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화가 나는 만큼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 국회의원들을 선출했고 저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우리가 투표한 결과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할 겁니다. “나는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해 무한의 책임이있듯, 국민도 국가에 대해 무한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저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세력을 지지하는, 그들을 선출하는 세력을 설득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돌아 봅니다. 선량한 시민의 의무는, 그것이 깨어 있는 시민이든 행동하는 시민이든 담벼락에 대고 욕하는 시민이든, 반대파를 비난하고 욕하고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무는 반대파와 토론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반대쪽에 선 세력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사악할수록 우리는 그들의 지지자를 더 열심히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의무를 얼마나 열심히 수행했습니까? 저부터 생각해 봅니다.


광장에서 우리는 모두 행동하는 시민이지만 모든 시민이 모든 시간에 다 투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많은 부조리를 뒤로하고 투사가 되지 못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많은 것이 지나가면,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자리는 우리의 집이고 학교이고 직장입니다. 저는 정의당 당원입니다. “나는 진보정당 당원이야라는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워집니다.


오늘 내가 사는 모습이 나의 의무입니다. “저 사람은 참 괜찮은 것같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진보정당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합리적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투사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제 인생을 살면서 5명의 사람에게 이런 평을 받는다면 행복하게 세상을 떠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광장에서 스티커를 떼고, 쓰레기를 줍는 것도 그 의무를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지 욕만 하고 있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욕을 해도 대안이 있어야 하고 욕을 해도 설득력이 있어야합니다. 설득력이 없는 비난은 싸우자는 시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들의 표를 한 표라고 가져와야 하는데 설득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말씀 드렸다시피 나는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실을 알리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와 함께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정치의 질은 국민의질을 능가하지 못 합니다.


어떤 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라고도 말씀합니다. 기울어진 언론구조, 많은 사람이 생계를 의탁하는 재벌 중심의 경제, 이러한 것들이 공정한 게임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게임이 우리에게 유리할 때에도, 또 그들의 주장이 온당치 못하다는 것을 알 때도 승리하지 못 했습니다. 온 국민이 분노했던 남양유업 갑질 사태는 잊혀졌습니다. 친박 실세는 예산폭탄을 빌미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성추행을 해도 국회의원이 되었고, 집값을 올려준다고 하면 사기꾼인 줄 알면서도 대통령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야당이 좌고우면하며 국민의 눈치만 본다며 많은 비난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정치는 과연 국민을 믿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야당이 그렇게 무섭다는 역풍, 그것은 학습효과이고 그 바람도 국민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야당의 정치인들이 걱정했던 것을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들이 과감한 수를 던질 때 국민이 내 편을 안 들어주면 어떡하느냐는 불안이었을 겁니다. 그들의 불안에 아무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들이 최순실은 몰랐다고 칩시다. 이 정도로 말아 먹을 줄을 몰랐다고 칩시다. 하지만 국민은 사학법 개혁을 가로 막았고 제대로 된 법안 하나 발의하지 않았으며 5년 사이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을 내놓은 후보, 늘 재벌과 보수 언론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의 후보독재시절 억울한 옥살이가 재심으로 바로 잡혔을 때 두 개의 판결운운하던 후보, 자기가 지금까지는 한 것이 없지만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던 후보를 뽑았습니다. 우리가 과연 국민은 옳고 야당 정치인은 그르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책임 있는 정치인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 반성하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정치인들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장 힘든 것이 상사의 마이크로 매니징입니다.상사가 모든 것에 간섭하고 나의 운신의 폭은 없는 상황이 가장 어렵습니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최고의 상사이고 우리는 한 팀입니다. 얼마 전 친구가 웃으며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DJP 연합이 됐겠냐? 난리가 났을 거다.” DJP 연합이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는 알 수없으나 성공한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IMF가 터지고 이인제가 출마하고 DJP 연합까지 이루어서 이겼던 선거입니다. 물론 한 번의 정권교체가 무엇보다 필요하던 당시와 부패 기득권 세력을 모두 몰아내야 하는 지금 연합의 의미는 다릅니다. 다만, 정치인들을 잘 감시하되 그들에게도 전략을 구사할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자기를 믿어 달라고 하는 만큼, 국민들도 정치인들이 국민을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팀이고, 최종책임은 팀장인 국민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들으시면서 국민들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고 훈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역사의 많은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우리 역사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4.195.16으로 실패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지식인들도 혁명에 기대를 가졌습니다. 교육학과에 다니던 시절, 공정한 교육 시스템 보다 어떻게든 내 자식이 남들을 밞고 올라갈 기회가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갈망하는 사회를 보고 성공한 혁명이 없던 역사를 뼈저리게 마음 아파했습니다. 87년에도 우리는 실패 했습니다. 더멀리,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도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막이 내렸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며 시작한 미국 독립혁명도 흑인노예를 해방하지 못 했습니다. 이런 어두운 역사가 저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는 또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말했다시피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오늘의 한국이, 미국이, 프랑스가 200년전 보다 퇴보했다고 하지는 못 합니다. 저의 의심의 눈초리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4.19를 지나고 5.16으로 18년의 군사 독재를 겪었습니다. 87년의 항쟁은 두 번째 군사정권을 맞이한지 7년만에 이루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이제 우리는 죽 쒀서 개주지 말자고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에 차 있습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민주주의는 결국 후불제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그 시대를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역자들 보다 옳아야 하는 만큼, 유능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세상이 그들의 세상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고 삶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정경유착의 늪에서 벗어 낫을 때 우리는 더 좋은 기업을 일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언론이 족벌의 손에서 벗어 낫을 때우리는 더 좋은 언론을 만들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쟁취하지 않은 가치, 우리가 지키지 못 하는 가치는 빚이고 언제든 부도가 날 수 있는 수표입니다.


이 싸움의 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위에 군림해온 친일의 후예, 부패세력, 수구 기득권들을 과감히 청소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습니다.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97년이 지나는 동안 이 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우리는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싸움이 아름다운 승리로 마무리 되길 다른 모든 분들처럼 바라고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더 빨리 돌려서, 우리의 손자 보다는 우리의 아들의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두서 없는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드리겠습니다.


죽 쒀서 개주지 맙시다. 

by maniacs | 2016/12/12 23:54 | 메모 | 트랙백 | 덧글(1)

 

내 몸이 수동기어를 기억하는 방식

00
작년부터 자동변속기 차를 몰고 있지만 내 첫 차와 두 번째 차는 수동변속기였다. 첫 번째 차는 취직을 하고 두 달치 월급을 모아서 산 155만원짜리 엑센트였다. 돈은 없는데 자동변속기인 차는 200만원이 넘었으니 별 수가 없었다. 장안평에서 차를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클러치를 밟는 왼쪽 다리가 덜덜 떨리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두 번째 차는 포르테쿱이었는데 또 굳이 수동으로 정했다. 남들이 못하는 걸 할 줄 안다는 게 뿌듯했던 것 같다. 그렇게 '범퍼카'는 타지 않겠다며 꽤 오래 버틴게 10년이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가지고 싶은 차가 생기고 나니 수동 기어에 대한 로망(새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5단을 튕기던 그...)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촌스럽게 보이던 우드그레인이 이제 이뻐 보이기까지 한다.

01
수동 차를 몰던 2011년에 영국에 여행을 가서 운전을 할 일이 있었다. 유럽은 자동변속기가 많지 않아서인지 자동변속기 차를 빌리면 가격이 비쌌다. 제일 작은 수동차를 고른 게 폴로였다. 좌우가 바뀐 차를 운전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페달 순서는 똑같겠지? 다행히 똑 같았다. 와이퍼랑 깜밖이 레버는 어느 쪽이지? 이건 반대였다. 몇일 동안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켰다. 기어순서는 똑같나? 똑 같았다. 왼쪽 위부터 1단이었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단수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다행은 아니었다.

02
내 몸은 1단을 '당기고' 5단을 '튕기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1단이 왼쪽, 5단이 오른쪽이 아니었다. 왼손으로 기어를 조작하는데 출발할 때 계속 기어를 '당겨서' 5단을 넣고 있었다. 희안한 건 와이퍼와 깜빡이 레버는 좌우로 기억하고 있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동 기어를 '당기고', '튕긴다'는 표현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05
이 현상이 일반적인 것인지 검증이 가능하다면 한 가지 변수가 더 들어가야 한다. 내가 왼손잡이라는 점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반강제로 오른손을 쓰도록 훈련된 왼손잡이다. 밥먹고 운동하는 것은 왼손으로 하지만 글씨는 오른손으로 쓴다. 가끔 (오른손을 다쳤다던가 할 때)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 보다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울에 비치듯이 거꾸로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 글씨체나 글씨의 바르기도 거꾸로 쓰는 것이 더 낫다. 다시 말하자면 왼손잡이들은 (혹은 그냥 내가) 인터페이스를 반대방향으로 뒤집어서 인식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기어의 방향도 그렇게 인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왜 와이퍼 레버의 방향은 계속 헷갈렸는지는 문제고 남는다.)

04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나만 그렇고 남들은 아니다.
2) 신체와 물리적인 거리에 변화가 생기는 인터페이스는 거리의 변화(당겨서 가까워지고, 밀어서 멀어짐)로 인지할 것이다
   (와이퍼와 깜빡이 레버는 거리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방향으로 인지할 것이다)
3) 언어가 인식을 지배하는 바람에 '당긴다', '튕긴다'는 표현이 존재하는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4) 왼손잡이들이 겪는 문제일 수 있다.

* 심리학 실험이라고 생각하므로 과학밸리로...

by maniacs | 2016/07/29 11:12 | 가설공작소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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